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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연재] 다른 색 리본은 더이상 없길... 보라리본 만드는 사람들

날짜
2023/10/14
단체명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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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과 미디어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 159명이 사망한 10월 29일이 돌아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죽음이 헛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행동하며 지난 1년을 살아낸 사람들이 준비한 추모 행사들을 기록으로 남긴다.[기자말]

‘진실의보라리본공작소 in 서촌’ 운영 첫날의 기록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려 전국에서 진행되던 노란리본공작소는 2023년에 보라색으로 리본색을 바꿔 다시 시작됐다. 지난 10일 저녁 7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에서는 ‘진실의 보라리본공작소 in 서촌’이 열렸다.
공작소 운영 첫날에는 노란리본공작소 활동을 오래하신 분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뭐든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분들 그리고 희생자 유가족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오랜 친구들을 포함해 13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마음을 담아 하나씩 정성스럽게
▲  진실의보라리본공작소 in 서촌 운영 첫날 참여자들이 리본을 만들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보라리본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단계를 거친다. 먼저 A3 사이즈인 보라색 EVA 폼을 리본을 만들기 좋게 재단을 한다. 큰 작두로 리본의 길이에 맞춰 9cm로 1차 재단을 마치면 0.7~0.8mm의 두께로 2차 재단을 한다. 너무 두껍지 않게 잘라야 나중에 예쁜 리본이 만들어진다.
오자마자 작두로 9cm를 척척 잘라주신 분은 노란리본공작소 일을 오래 한 베테랑 박종성씨다. 두 겹을 놓고 눈대중으로 슥슥 자르시는 솜씨가 ‘과연 베테랑 전문가’라는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  보라리본공작소 참여자가 리본 재료를 자르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재단이 끝난 보라 막대기는 옆으로 옮겨져서 리본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이미 만들어진 샘플을 보면 간단한 것 같은데 막상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쉽지 않다. 리본의 다리 각도도, 둥근 머리의 크기도 중요하다. 요리조리 움직여 가장 예쁜 모양이 만들어지면 순간접착제로 고정시킨다. 이것도 쉽지 않다. 아차 하는 순간에 리본이 아니라 내 손가락을 붙여버린다.
노란리본공작소 활동을 오래한 시민 이애형씨가 접착제를 붙일 때 나무젓가락을 뾰족하게 써서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적절한 연장을 사용하니 훨씬 만들기 편하다. 왠지 만들수록 더욱 예뻐지는 것 같다.
▲  보라리본공작소 참여자가 리본을 만들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그다음은 리본의 양 끝을 균형있게 맞춰서 가위로 자르고 체인을 거는 일이다. 끝을 자르는 가위질은 예쁜 리본 만들기의 화룡정점이다. 양 끝의 길이를 맞춰 여러번 자르다보면 어느새인가 너무 짤똥한 리본이 된다.
사람들이 예쁜 리본만 골라간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진다. 만드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번 외치며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리본을 만들려 노력한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2시간이 금방 지났다. 어느새 완성된 리본이 한가득 쌓였다.
“친구 옆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  공직소 참여자들이 2시간동안 만든 진실의 보라리본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저녁시간에 부담없이 잠깐, 저 멀리 인천 송도에서 혹은 가까운 곳에서, 노란리본공작소 활동을 했던 혹은 이번이 처음인 그리고 사회적 참사 유가족이 돼 버린 친구 곁을 지키기 위해 시간맞춰 한걸음에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 자리에 모인 13명은 10.29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나눴다.
“피해자분들 그리고 그분들 가족들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의 일인거잖아요. 어떻게보면 다 함께 상처받고, 다 함께 힘든 거여서 일종의 치유과정이 필요하고 이 공작소가 서로의 마음을 나누면서 치료과정도 되는게 저는 개인적으로 좀 많이 좋았던것 같아요.”
10월 29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억을 남겼다. 용산에 사는 필자는 ‘해밀턴호텔 부근 통행이 어려우니 우회하라’는 재난문자를 받고는 ‘길 좀 막히는걸로 무슨 재난문자까지 보내냐’며 불만을 쏟아냈던 2022년 10월 29일 밤이 여전히 생생하다. 어쩌면 내가 그 곳에 있던 희생자가 됐을 수 있다. 내 가족이, 내 지인이 그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던 그 시간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희생자 이상은씨의 유가족은 ‘유가족이 되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또 유가족이 되고 보니 같이 애도하고 참여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배웠다’며 감사인사와 함께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퇴사 준비 이야기, 살림하는 이야기, 책 이야기 같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이야기부터 대부분 유가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그렇지 않아서 놀랐다는 이야기, 리본공작소 활동이 슬픔을 무겁지 않게 나눌 수 있는 공적 애도의 시간이라 좋았다는 이야기, 노란리본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다는 이야기까지.
“저희는 아이를 보낸 저희 친구 마음을 사실 잘 몰라요.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냥 친구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 같이 밥 먹고 친구가 있는 자리에 같이 있는 거예요… 이렇게 오늘 저희 친구 옆에 함께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의 보라리본공작소를 찾아주세요
‘진실의 보라리본공작소 in 서촌’은 10월 한 달 동안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다. 또한 1주기를 앞두고 10월 16일부터 서울광장 분향소에서는 집중추모주간으로 시민들의 조문을 받고 추모활동을 진행한다. 특히 16일부터 20일까지 분향소 앞에서는 유가족들과 함께 진실의 보라리본공작소를 집중 운영한다.
보라리본에는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마음,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제대로 된 책임을 지길 바라는 마음, 앞으로 다른 색 리본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담겨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해 더 큰 마음이 모아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연재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사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공식 홈페이지(www.1029act.net)에서 다른 1주기 추모 행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